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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시대신문] 국내외, 글 쓰는 노년 크게 늘어나,슬픔 등 심적 고통 글쓰기로 치유
  • 관리자
  • 2013.03.27 16:28
  • 937




















    [362호] 2013년 03월 22일 (금) 오현주 기자 fatboyoh@nnnews.co.kr









       
    ▲ 덕성여대 평생교육원에서 글쓰기를 배우고 있는 어르신들. 1주일에 한번씩 작품을 발표하고 서로 평가도 한다.

     

    “정체성 찾고 카타르시스 경험도”

    때 늦긴 했지만 또 다른 행복 찾아

     

    “수필을 이렇게도 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제가 복사를 해왔습니다. 제가 읽어볼 테니 한 번 들어보세요.”

    3월 중순 봄 햇살이 가득한 날 오전, 서울 운현동에 있는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308호 강의실. 어르신 30여명이 귀를 쫑긋 세웠다. 제목은 ‘배알 꼴리는 것’. 비속어가 난무한다. 여성이 쓴 글이다. 이 글을 소개한 이는 국어교사 출신의 윤태근(66·서울 구산동)씨로 3년 전 ‘수필교실’을 찾았다. 윤씨는 “퇴직 후 6개월간 쉬면서 해외여행도 가보고 등산도 다녀봤지만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됐다는 사실이 가장 고통스러웠다”며 “이곳에 나오면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명확히 알게 됐다”고 말했다. 

    윤 씨처럼 글쓰기를 배우는 어르신들이 늘고 있다. 이들의 요구에 맞춰 각 백화점문화센터, 지역의 복지관과 도서관, 사설문화아카데미 등에서 글쓰기 과정을 두고 시·소설·수필 등을 배울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롯데문화센터와 복지관 등지에서 14년째 수필을 가르쳐온 권남희(58·여·한국수필 편집주간)씨는 “여성은 대개 자식을 대학에 보낸 후에, 남성은 퇴직 후 많이 찾아오세요.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자기 작품을 발표하고 남의 작품을 평가하면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책을 내는 분들도 많다”고 전했다.

    노년의 문학 열풍은 국내에만 그치지 않는다.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바람이 불었다. 2차 대전 후인 1947~49년에 태어난 우리나라의 베이비부머에 비견되는 단카이(團塊)세대가 최근 은퇴시기를 맞아 본격적인 글쓰기에 도전, ‘노년신예작가’의 등장이 줄을 잇고 있는 것. 후지사키 가즈오씨는 작년에 74세의 나이로 군조신인문학상 우수상을, 다키 히카루씨는 73세에 ‘신의 라면’이라는 난센스 단편소설집을 출간했다. 75세에 일본의 최고 권위의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구로다 마쓰코씨는 “젊은이들에게 미안한 감이 있지만 늦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92세에 회갑 넘은 외아들의 권유로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한 시바타 도요씨가 98세에 첫 시집 ‘약해지지 마’를 발간, 100만부가 넘게 팔리는 밀리언셀러가 됐다. 100세에 두 번째 시집을 낸 뒤 작고한 시바타 도요씨는 “나는 그저 나처럼 못 배운 사람들한테 용기를 내라고 시집을 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도 시바타씨 같은 이가 있다. 초등학교 4학년 중퇴하고 결혼 후 6남매를 키운 진효임(71·여·경기도 고양시)씨는 지역 복지관에서 글을 배워 최근 ‘치자꽃 향기’란 시집을 냈다. 진씨는 “행여 이름을 쓰라고 할까봐 아이들 학교에도 가지 못했다”면서 “나는 못 배운 사람이라 긴 글을 못 써서 시를 썼을 뿐”이라고 겸손해 했다.

    이들은 왜 이렇게 뒤늦은 나이에 글을 쓰기 시작할까. 권남희 씨는 “평생 자식 뒷바라지하면서 자기를 잊고 살았다가 어느 날 내가 지금 무얼 위해 사는가 하는 자각이 들면서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해 문학을 선택하신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화학교사 출신의 음춘야(77·여·서울 역삼동)씨는 지역의 문화센터에서 수필을 배워 ‘외다리안경’ 등 2권의 수필집을 냈다. 음씨는 “4남매를 다 키우고 공부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 3년간은 ‘서양철학’ 같은 인문학도 듣고 국악도 들었지만 수업시간에 졸리기만 하고 남는 게 없었다. 그러나 문학은 창작이고 뭔가 고민해야 하는 분야라 보람도 느꼈고, 비록 누가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나도 전문인이라는 프라이드 같은 것이 생겨 좋았다”고 강조했다.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면 재능기부에 앞장 서는 어르신도 있다. 문학계간지 ‘미래시학’ 발행인 박종래(65)씨는 3년째 시낭송 단체 ‘열린시(詩)서울’을 이끌고 있고, ‘시(詩)숲아카데미’에서 무료로 글쓰기 강습을 해오고 있다. ‘열린시서울’의 어르신들은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오후, 지하철 3호선 옥수역에 모여 시낭송으로 일상생활에 지친 시민들을 위로해주고 있다. 박씨는 “역장의 부탁으로 모임을 갖게 됐다. 즉석에서 시민들에게 ‘시책’을 나눠드리고 시를 낭독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고 했다.

    어르신들은 갈고 닦은 솜씨를 객관적으로 평가 받는 기회도 갖는다. 고양시일산노인종합복지관(관장 김학석)은 3년 전부터 ‘전국어르신백일장대회’를 개최했다. 해마다 참가자 수가 늘고 있는데 작년 10월 열린 대회에는 1000명이 참가했다. 만 60세 이상이 사전응모와 백일장에서 산문과 운문 두 분야로 나눠 실력을 겨룬다. 지난 해 이 대회에서 ‘꽃’이란 제목으로 대상을 수상한 김재숙(69·여·경기도 고양시)씨는 “버스를 대절해 대회장에 오는 걸 보고 글 쓰는 분들이 많다는 걸 느꼈어요”라면서 “남편을 떠나보내고 ‘이 세상을 먼저 간 이들은 우리 앞에 무엇이 돼 나타나나’ 라는 생각을 줄곧 해왔고 그 생각을 글에 담았다”고 말했다.  

    늦깎이 문학도들이 새로운 문학세계에 눈을 뜬 후 한결 같이 하는 말은 그야말로 ‘살맛이 난다’는 것이다.    

    “글을 쓰고 나서 예술창작활동에 동참한다는 자부심과 함께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기쁨을 맛본다”고 입을 모은다. 평생교육원에서 수필을 배우고 있는 공무원 출신 이농무(76)씨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풀어놓는 과정에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고 자랑했다. 

    마침 글 쓰는 행위가 노년 건강에 좋다는 실험 결과도 나왔다. 글쓰기가 분노, 슬픔 같은 마음의 고통을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런던 킹스대학 심리학과 수전 스카이트 박사는 영국 심리학과 학술대회에서 ‘경직된 감정을 글로 쓰면 긴장이 풀리면서 상처 회복이 빨라질 수 있다’고 했다. 

    글 쓰는 노년시대, 많은 노인들이 늦긴 했지만 삶의 또 다른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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